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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사유/예술칼럼

예술이 삶에 필요한 이유 – 플라톤의 <동굴속 우화를 통한 이데아론>을 반박하며

by Ignacio2023 2023. 11. 12.

 

예술이 삶에 필요한 이유 – 플라톤의 <동굴속 우화를 통한 이데아론>을 반박하며

 

플라톤은 예술은 가상의 가상으로 취급하며 하등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것은 주장한 ‘동굴속 우화’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데아’이론을 주장한 플라톤의 동굴속 우화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동굴속에 뒤룰 돌아볼 수 없게 꽁꽁 묶인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 뒤에서 말과 나무를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들이 빛을 받아 묶여있는 사람들의 앞쪽 벽면에 그림자가 비춰진다. 사람들은 평생 그것을 보면서 진짜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람이 풀려나 동굴 밖으로 나가 진짜 나무와 동물들을 본다.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와 묶여있는 사람들에게 동굴 밖에 실제가 있으니 나가자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이 내용은 우리는 우리가 보는 세상을 진실로 믿고 살지만 그 너머에는 또 다른 진리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이데아’의 세계인 것이다.

 

 

 

 

연극은 인간 삶의 모방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 모방된 삶 속에서 또 다시 모방된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연극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런 가상의 모방인 연극과 예술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했다. 그가 생각했을 때는 오랜 수련과 공부를 통해 이데아로 다가가기에도 부족한 삶 속에서 모방의 모방을 보고있으니 그런 사람들이 한심해 보였을 법도하다.

 

하지만 플라톤의 사상이 곧 진리가 아니고 이데아의 실체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데아는 각자가 믿는 이상적인 세상이며 죽음 직전에 돌아보는 내 삶이 곧 이데아가 아닐까 생각된다. 멀리서 바라본 내 삶은 결코 부정할 수 없으며 그것이 내가 살아온 진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이론에 따르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인 즉슨 볼펜과 같은 사물은 ‘글씨를 쓰기위해’라는 본질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사물이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은 그냥 태어나진 것이고 무엇을 해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을 통해서 그 본질을 찾는데 노력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론과 대립하여 우리는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가짜 삶’을 보면서 인생의 ‘진리’를 찾기 위해 애쓴다. 무대 위 캐릭터들은 각자의 ‘본질’을 보여준다. 살인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지 캐릭터, 사랑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두 남녀, 모성애 또는 부성애를 발휘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모, 이른 죽음으로써 안타까움을 자아내기 위해 희생되는 아이들, 이렇듯 수 많은 캐릭터를 통해서 인간의 본질과 참 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렇듯 예술을 통해서 삶의 진리를 찾아가고 결국 나의 ‘본질’을 찾아 그 쓰임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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